영국으로 날아온 여독이 풀리지 않아서 그런지 움직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졸리기도 하고... 아파트 발코니에 앉아 쉬면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정박한 요트를 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다가 졸리면 자고... 그럴려고 휴가온 것 아닌가?
시차를 극복하는 지름길은 자꾸 움직이는 거라고 하면서 딸이 나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우리는 작년에 가보지 못했던 그리니치 왕립천문대를 가보기로 했습니다. 천문대라고 해봐야 지금은 박물관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지구의 경도와 시간의 기준점을 제공하는 곳이니 런던에 온 김에 한번쯤 들러보기로 했습니다.
카나리 워프에서 다소 멀기는 하지만 걸어갈 수도 있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걷기로 했습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우산을 썼다 접었다를 반복하면서 템즈강의 강북산책로를 따라 상류로 올라갔습니다. 강가를 걸으면서 템즈강의 풍부한 수량을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강 건너편에는 17세기에 지어진 왕립해군병원과 우리의 산책목적지인 왕립천문대가 보였습니다. 이 두 건물은 전설적인 건축가인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 1632~1723)이 설계했습니다. 렌은 런던 시내의 세인트 폴 대성당을 설계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강가를 걸어가면서 그 동안 못했던 얘기를 했습니다. 딸이 취업했던 1년 전에는 지금보다는 조금 나았지만, 취업하기 어렵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딸이 대학에서 공부하던 얘기, 취업전쟁에서 살아남은 얘기, 그리고 사무실에서 일하던 얘기를 흥미진진하게 들었습니다.
대학 졸업반이 되면서 친구들이 다들 취업되었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불안했다고 합니다.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중국유학생들은 잘도 취직되는데 한국인 유학생 선배들을 볼 때 한국 국적으로 영국에서 취업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2년 전 어느 날, 딸이 한국으로 전화해서 나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취업에 관한 기본원칙과 전략을 세우도록 충고해 주었습니다. 기본원칙은 “네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해라”였습니다. 너무나 평범한 얘기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딸은 금융 또는 재무분야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전략을 다음과 같이 세우도록 조언했습니다. 이것 또한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소위 3단계 방어선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첫째, 금융산업의 꽃인 투자은행에 지원한다.
둘째, 투자은행에 취직이 안 되면, 상업은행이나 다른 산업에서 재무관련 업무에 지원한다.
셋째, 그것도 안 되면, 귀국해서 한국의 금융산업에 지원한다.
입사지원서를 유럽계와 미국계 투자은행뿐만 아니라 몇몇 타산업에도 보냈다고 합니다. 최종적으로 인터뷰를 하도록 연락이 온 곳은 유럽계와 미국계 투자은행 각각 한 곳과 블룸버그였다고 합니다. 유럽계는 미국계와는 달리 조금 더 인간적인 면이 있고 조건도 더 좋았기 때문에 유럽계 투자은행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터뷰까지 잡혀 있던 미국계 투자은행은 최근 파생상품으로 파산한 은행이었습니다.
유럽계 투자은행의 채용과정은 서류심사를 거쳐 인터뷰를 합니다. 인터뷰는 동료인터뷰와 상사인터뷰, 최종적으로 디렉터인터뷰가 있었다고 합니다. 인터뷰시간을 다 합치면 6시간 정도는 됐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형식상으로 우리나라의 선발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와 결정적으로 다른 특이한 점은, 배경조사라고 할 수 있는 Background Screening이라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입니다. 지난 6년간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연락처를 써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전문회사에 의뢰하여 내용확인과 평판조사를 합니다. 학력과 경력, 인턴과정에서의 성실성 등을 일일이 조사합니다. 말하자면 공식적인 뒷조사를 하는 셈입니다.
우리나라의 인재선발시스템은 신정아씨의 동국대 교수 채용에서 보았듯이 낙후된 정도가 아닙니다.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직도 허위학력과 경력들이 아무런 검증절차를 거치지 않고 통과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고 나서도 허위학력과 경력으로 처벌을 받는 나라이기에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정당에서 공천하면서 어떤 절차를 거치는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관행입니다. 유럽계 투자은행이 대졸신입사원을 뽑는데도 그런 엄격한 절차를 거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신뢰는 언어에 있지 않고 시스템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언어는 항상 생략되고, 왜곡되고 일반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의 언어는 타인을 속입니다. 나는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고 가장합니다. 나를 믿으라고 강요하기도 합니다. 나는 유능한 사람이라고 포장합니다. 심지어 나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졌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인간의 언어는 사악합니다. 이 언어의 사악함을 중화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시스템입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 TV뉴스에서는 전직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가 구속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언어를 믿고 거래를 했을 것입니다. 역대 대통령의 친인척들이 구속되는 치욕을 아직도 끊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언어의 사악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은 언어의 힘을 믿고 그 위력에 의지하여 음성적인 거래를 했을 것입니다. 시스템으로 언어의 사악함을 예방하지 못하고, 꼭 사후에 정치적 보복처럼 보이는 방식으로 처리합니다. 시스템으로 제어할 수 있는 길을 우리는 과연 언제쯤 찾을 수 있을까요?(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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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이야기 2009/03/13 1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아~ 따님께서 그 회사에 가실 뻔했다니!!
어쨌든 참 능력 있는 따님을 두셨습니다. ^____^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나라는 참 시스템이 투명하지 못합니다.
작년에 홍콩을 여행한 적이 있는데, 홍콩이 현재는 중국 영토이지만 영국 영토에 속했을 때
현재의 시스템이 갖추어져서 무척 투명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부정부패, 비리가 극히, 정말 아주 극히 드문 곳이라고 하더군요. 중국 본토와는 완전히 다른 그 분위기가 바로 영국이 선물해 준 것이라는 것입니다. 식민통치의 올바름 여부를 떠나 당시 영국은 아시아에 진출하려는 기반으로 홍콩을 택했고 홍콩 사람들을 학대하지도 않았기에 어떤 홍콩 사람은 영국에 대해 감히 '선물'로 생각한다는 말까지도 하더라고요. 물론 젊은 사람이긴 하지만요.
우리나라는 일제의 '학대'를 겪으면서 나라가 참 많이 왜곡되었지요. 지금도 반민족행위자 청산은커녕 진상규명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요.. 그 여파가 지금껏 이렇게 투명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고 있는 게 아닌지.. 괜히 일제 탓 한번 해 봅니다.
투명성이야말로 사회운영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것 같습니다. 투명하지 않으니 뒷거래를 하고, 뒷거래를 하니 불공정한 인사관행과 거래관행이 뿌리뽑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부패의 척도를 투명성으로 재는데는 그 이유가 있습니다.
혹시 앞으로 기회가 되시면, 독일 뮌헨의 북쪽으로 약 30여킬로 떨어진 곳에 다카우(Dachau)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유대인강제수용소가 있던 곳인데요. 독일인들이 저질렀던 과오를 그대로 보존하여 역사교육의 장으로 만들어서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 얘기를 블로그에 쓰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우슈비츠수용소를 많이 알고 있지만, 그 규모가 조금 작을 뿐, 운영방식은 똑같았습니다. 그 박물관안에 들어가면, 생체실험하는 사진과 기구들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어,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것을 그대로 전시하여 역사교육을 하는 독일인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