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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난 여름 영국에 있는 브루더호프(Bruderhof) 다벨공동체(Darvell Community)를 방문했을 때, 그들의 무소유의 신념, 봉사와 희생정신에 기반한 내면의 아름다움, 공동체 마을에 깃든 평화로운 아우라(aura)와 자연스럽게 화음으로 퍼지는 찬양은 나를 감동케 했습니다.

 

다벨 공동체 입구

그런 공동체 내에서 처참하고도 엄청난 사건들이 있었다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끊임없는 배신, 권모술수와 권력투쟁, 사선을 넘나드는 아픔과 육체의 질병, 질병으로 인한 죽음과 씻기 어려운 마음의 상처, 그리고 용서, 사랑과 평화

 

내가 눈물이 많은 사람은 아닌데도,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가장 저열한 행태에서부터 가장 숭고한 용서와 사랑의 행위까지 드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어린 아이들이 제대로 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해 죽어가는 모습에서, 나는 고이는 눈물을 참으려고 자꾸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이 책은 요한 하인리히 아놀드”(Johann Heinrich Arnold, 1913-1982)의 생애를 그린 전기입니다. 그의 외손자 피터 맘슨(Peter Mommsen)이 외할아버지의 생애를 기술한 것이지만, 무소유의 기독교 생활공동체 브루더호프(Bruderhof)의 탄생에서부터 오늘날까지, 그 생생한 역사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기도 합니다.

 

하인리히 아놀드의 아버지 에버하르트 아놀드((Eberhard Arnold, 1883~1935)는 독일에서 신학, 철학, 교육학을 공부하여 1909년에 에어랑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해 에미(Emmy von Hollander)와 결혼했습니다. 작가와 강연자로서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1920년에는 베를린 중상류층의 특권을 버리고 아내 에미와 아들 하인리히를 포함한 온가족이 독일 중부지방의 자너츠(Sannerz)라는 조그만 마을로 옮겼습니다. 거기서 신약성경의 산상수훈에 기초한 신앙공동체인 브루더호프(Bruderhof, 형제의 공간)를 세웠습니다. 후일 독일 튀빙겐대학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은 브루더호프에 대해 매우 어둡게 보이는 시대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 책을 쓴 저자도 자너츠의 정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에버하르트와 에미는 사유재산제가 절도이며, 제아무리 훌륭한 선진문명이라고 해도 가난한 자들의 등 위에 세운 문명은 썩었다고 믿었고 사랑의 공산주의를 가르쳤습니다. 자너츠에서는 무엇이건 자기 것으로 주장하는 사람이 없었고, 모든 수입과 모든 물건이 공동체에 속했습니다

 

에미는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대중의 고통을 나누기 원하는 우리가 어떻게 우리 몫으로 뭔가를 챙길 수 있겠어요. 우리는 우리와 같은 사랑의 정신으로 섬기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주고 싶어요. 무소유의 욕구는 우리에게 신조와도 같아요.

 

나치 정부의 핍박이 가혹해지면서 독일 땅을 떠나야 했습니다. 영국에 잠시 머물렀지만, 당국은 적국에서 온 공동체에게 아량을 베풀지 않았습니다. 유럽에서는 공동체를 받아 줄 나라가 없었습니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공동체를 받아준 나라가 파라과이였습니다. 그들이 살 수 있도록 허용된 땅은 질퍽질퍽한 초원과 처녀림으로 이어지는 버려진 방목장이었습니다. 공동체는 목숨을 걸고 일해서 숙소와 공동시설을 지어 마을을 건설했습니다.

 

위생상태가 안 좋아 아이들과 허약한 사람들은 병들어 죽어갔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공동체의 비전을 가지고 가난과 죽음에 맞서 번창하는 공동체를 일구어 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스(에버하르트의 사위, 그러니까 하인리히의 매형)은 세속적으로 보면 아주 유능한 회계사였는데, 공동체에 들어와서 온갖 술수를 부려 공동체의 헤게모니를 잡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인리히는 공동체로부터 격리되는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합니다. 그 고통 속에서 한스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한스는 사람들을 망치로 내려치지 않아. 그렇게 했다면 사람들이 느끼고 반란을 일으켰겠지. 그가 사람들을 쥐어짜는 방식은 수압프레스와 비슷해. 서서히 누르지만 결국 마지막 한 조각의 생명까지 짓눌러 버리지.

 

하지만, 끝까지 인내하면서 매형을 용서하려고 합니다. 그러는 와중에 공동체가 성장하여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고, 운영비를 감당하기 위해 미국으로 모금여행을 떠납니다. 하인리히가 모금여행에서 얻은 것은 기대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성공적이었고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습니다.

브루더호프의 공동체생활에 관심을 보이는 미국인 부자들이 합류하거나 재산을 기부하는 경우도 생겨났습니다. 미국 동부에 브루더호프를 세워 하인리히가 이끌었고, 서로 다른 사상과 신념, 습관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아름답게 성장해갔습니다.

 

그러는 동안 파라과이 브루더호프는 내부에서부터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인리히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공동체의 전문가가 되었지만, 서로를 미워했습니다. 공동체주의가 그리스도를 대체하고 말았습니다.

 

에버하르트가 죽은 후, 브루더호프에는 공식적인 책임자 없이 20년이 넘도록 한스가 리더의 역할을 해 왔습니다. 그는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사람처럼 배후에서 다른 사람을 조종함으로써 자기 뜻대로 움직이게 했습니다.

 

어느덧 사람들은 통일성 있는 리더십을 발휘해 줄 진정한 리더를 세우고 싶어했고, 공동체 전부가 하인리히가 적임자라는 폭넓은 지지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는 그러한 제안을 거절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종과 노예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형제들 속에서 형제로 있고 싶을 뿐입니다. …… 참된 리더십은 섬김입니다. 그것을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쓴다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1962년이 되자 하인리히는 공동체의 장로로 지명되었습니다. 그 후 1982년 사망할 때까지 20년간 브루더호프의 공식적인 리더로 봉사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끊임없는 배신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단 하루라도 불신 속에서 사느니 천 번 신뢰하고 배신당하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추행과 악행은 결국 권력욕에서 나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도사리고 있는 사악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권력에의 의지이며, 이것이 악의 근원인지도 모릅니다. 사랑의 꼬뮨은 악의 근원에 대해 성찰하게 합니다. 에버하르트 아놀드와 그의 아들 하인리히 아놀드가 일구어낸 사랑의 꼬뮨 브루더호프는 이 패역한 세상에 한 줄기 소망의 빛을 비추고 있습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에 관심이 있는 분은 www.churchcommunities.org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를 소개하는 동영상은 <여기>를 눌러서 보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이 공동체가 운영하는 출판사의 출판물들을 무료로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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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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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중구 2008/12/12 0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몇 년전에 '세계 어디에도 내집은 있다' 라는 책에서 브루더 호프를 방문하고 쓴 글을 읽었습니다. 제가 은퇴 후에 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가 세계 곳곳에 있는 공동체를 방문하고 직접 살아 보는 것입니다. 남인도에 있는 명상 커뮤니티인 오로빌도 그 중에 한 곳입니다. 브루더 호프는 영국을 방문하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합니다.

    교도기후협약에서 지구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약속한 탄소배출권 한도 설정은 잘 지켜지기만 하면 인류를 환경파멸로부터 지킬 수 있는 방편입니다. 이 협약은 지금처럼 인간이 살아서는 50년전 지구가 더 견딜 수 없다는 절박함을 표현입니다.

    사유재산제도는 경제와 과학의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지만, 글로벌하게 한정된 자원을 지키는 일에는 실패한 사회제도입니다. 브루더 호프는 그런 관점에서 새로운 대안이 아닐까 합니다. 내년에는 우선 예수원을 한번 방문해서 한 주일 동안 살아 보려고 합니다.

    감동적인 글 입니다.

    • 최동석 경영연구소 2008/12/12 16:54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공동체 생활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저도 아주 많습니다. 이번에 부르더호프에 가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인간의 삶의 원형이 공동체였으니까요. 아주 평화롭고 편안하고 서로 자기 것이 없다고 하면서 서로서로 돕는 삶의 모습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현대문명의 이기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공동체의 삶으로 귀화할지 누가 알겠습니까. 공동체의 삶을 일단 얼마간은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나는 아내로부터 내 글이 늘 어렵고 무미건조하다고 핀잔을 받는 편인데 감동적이라니 감사합니다.

  2. 김중구 2008/12/19 17: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위 책을 주문처로부터 받았습니다. 아직 제대로 들여다 보지 못했지만, 기대가 됩니다. 이번 주말에 집에서 천천히 읽어 보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몇 몇 성공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공동체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원만 해도 상당히 오래 지속된 곳이지요.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태백지역이라 관심이 특히 많이 가는 곳입니다. 겨울에는 방문객이 적어서 아마 어느 때도 자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내는 비판적인 속성이 있나 봅니다. 서로가 많이 믿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제 아내도 은근히 남편이 하는 일에 비판적이긴 합니다만, 속을 들여다보면 아끼는 마음이 더 간절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최박사님 위 글은 정말 감동적이니 믿으십시요! 제가 바로 책을 주문했으니까요. 요즘 서점에 책이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갑이 얇아 지니 책 사기 먼저 줄이는 모양입니다. 오늘 출판기획하는 사람들 만나서 다음 책에 대해 의논을 나누었습니다. 일반 출판사하고는 좀 다른 컨셉이라 기대가 됩니다.

    • 최동석 경영연구소 2008/12/23 1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책을 주문했군요. 영혼을 순수하게 정화시키는 책입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공동체생활을 한다는 것이 각자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생활양식이라서 오래전에 생각했었는데, 세파에 시달리면서 그런 생각을 그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영국여행길에 들렀던 브루더호프인 다벨공동체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다시 떠올리게 했습니다. 인간의 삶의 원형(archetypus)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꿈꾸는 인생"이라는 책을 주문해서 읽고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금년 한 해를 결산해보면, 공동체 생활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3. 김중구 2008/12/26 17: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 일요일 하루 동안 책을 다 읽었습니다. 근간에 이렇게 나를 잡아 당기는 책을 읽은 적이 없었습니다.

    아놀드는 회심과 관련하여 이런 표현을 쓰고 있네요.

    "신경작용이나 감정으로 촉발되는 그 무엇이 아닌, 더 깊고 진실하고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힘, 마치 영혼에 동이 트는 듯 했다" (208쪽)

    좀 더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다면, 평생 이런 회심을 느낄 때가 오려나 모르겠습니다.

    행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가 바로 연대라고 합니다. 하이너는 이런 연대에 매우 뛰어났던 인물이였나 봅니다.

    "가장 깊은 생각과 감정을 다른 사람과 나눈 적이 있나요?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문제들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자주 이야기를 나누나요?" (330쪽)

    우리가 속해 있는 community 중에 이런 기회를 주는 곳이 어딘가 모르겠습니다. 가족? 직장? 동창회? 교회의 모임?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아, 세상 헛 살는 것 같습니다. 이런 공동체가 있다면 좋을 텐데.

    그 외에도 여러 구절을 메모해 두었습니다. 좋을 책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탄과 새해 인사도 함께 전합니다.

    • 최동석 경영연구소 2008/12/27 2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언젠가는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맑은 영혼으로 일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돈과 출세를 위해 살아가는 것보다 더 힘겨운 투쟁의 역사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세계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아직 제대로 성숙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오늘은 어느 결혼식에 다녀 왔습니다. 어떤 축의금도 화환도 정중히 사양하는 결혼식이었습니다. 잠원동의 어느 교회당이었습니다.

      혼주와 눈도장을 찍기 위해 봉투를 들고 접수대에 길게 늘어선 모습을 늘 보기 좋지 않게 생각하던 터라 오늘의 결혼식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양가 부모에 대한 큰절도 없이 간소하면서도 경건하고, 그러면서도 유머가 있는, 그러면서도 전통을 무시하지 않은 참 깔끔하고도 감동적인 결혼식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내 우리 아이들도 이런 결혼식을 하게 할 수 없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영성이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자연스런 삶이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너무 아무 생각없이 남들이 하는 일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하이너의 생각은 그런 점에 배울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