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내를 1977년에 만났습니다. 처음 뒷모습을 보고 반했죠. 앞모습도 역시 그랬습니다. 그 때 박힌 인상은 평생 나를 떠나지 않는군요. 아마도 나의 뇌세포에 강한 신경망(neural wiring)을 형성해 놓은 모양입니다. 뒷모습을 먼발치서 보고 있었습니다. 그녀와 함께 걷은 모습을 상상하곤 했지요. 그리고는 이렇게 저렇게 만나 서로 가까워졌습니다.
결혼했지만, 자라온 환경이 너무도 달라 거의 모든 생활습관이 반대였습니다. 아내는 해산물과 생선을 좋아했고, 나는 강원도 촌놈이라 야채와 비빔밥을 즐겨 먹었습니다. 그 동안 많이 적응이 됐지만, 지금도 비린내 나는 음식을 별로 좋아하진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맛있다고 하면서 먹어줍니다. 세 살 때 먹던 음식은 정말 평생 가는가 봅니다.
음식뿐이 아닙니다. 생각하는 게 대부분 반대입니다. 내가 퇴근하면, 아내는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의 자초지종을 얘기하지만, 나는 자질구레한 스토리보다 그 결과를 먼저 알고 싶어합니다. 치약 짜는 순서와 이 닦는 버릇까지 전혀 딴판입니다. 아내는 주말이면 바람을 쐬고 싶어하는데, 나는 창문 열어 놓고 책만 붙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한 구석도 비슷한 데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슨 일을 해도 언제나 나를 믿었습니다. 신뢰는 상대방에게 약점을 드러내는 마음인가 봅니다. 나는 아내에게 나의 약점을 모두 드러냈습니다. 집안에서 내 약점과 단점을 맘껏 드러낼 수 있을 때, 비로소 내 잠재력이 발휘될 수 있음도 알았습니다. 약점을 숨기려고 하면, 항상 긴장하게 되고, 긴장하면 자기 재능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내는 내가 매사에 긴장하지 않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붙여 보았지만,
늘 그렇듯이, 언어는 내 생각의 일부만 표현할 뿐입니다.
1.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얘기를 천사의 말처럼 들리게 하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여자들의 진한 화장이 내면의 결핍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머리로 생각하는 것보다 가슴으로 느끼는 것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4. 부와 명예보다 신뢰와 애정을 더 우선시하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09년 5월 경상북도 주왕산 등산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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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독백 2009/06/30 17: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혼하고 일년쯤지나 우리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일년간 투닥거리기도 몇 번 했습니다.
그러나 소장님말씀대로.. 그런 다름을 제쳐 둘 만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오래 살진 않았습니다만.. 다른건 다르다 인정하고 서로의 믿음을 쌓아가며 살아야겠다..
글을 보고 가슴으로 부터 그 사람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네요..
믿음 위에 만들어갈 앞으로의 시간들이 설레기도 하구요..
주신 글들에 맺혀진 사랑을 제 와이프에게도 전해야겠습니다...
애기 백일 때문에 대구 내려가있는 와이프가 갑자기 보고싶어집니다. ^^
갈등이 없다면 부부가 아닐 것입니다. 갈등을 통해 성숙해 갑니다. 적어도 우리 부부는 그랬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신뢰를 잃지 않아야 하죠. 내가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골프스윙이나 수영스트로크에서 몸에 힘을 뺄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듯이 말이죠.
힘을 빼면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마음과 몸에 온통 힘이 들어가 있으면 자연스럽지 않고 스윙이나 스트로크가 영 형편 없잖아요. 삶도 힘을 빼면 아름답게 되는 것 같아요.
친정에 간 아내와 애기가 한시 바삐 서울로 올라왔으면 좋겠죠. 나도 그 맘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댓글 감사하구요. 행복한 나날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