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늘 가보고 싶었습니다. 태안반도가 시커먼 기름으로 뒤덮인 장면을 수없이 보았지만, 태안에 직접 가서 돕지는 못했습니다. 지난 주말(2009.6.26~27) <희망제작소> 주최로 1박2일 천리포수목원에서 Hope Makers’ Club 회원들이 참석하는 모임이 있어 참가했습니다. 태안반도는 겉에서 보기에는 기름피해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전문가들은 재앙으로부터 회복되려면 수십년이 더 걸릴 것이라고 합니다만, 내 눈에 보이는 깨끗한 해안은 옛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민병갈 선생(Carl Miller, 1921~2002)은 24세의 젊은 나이에 미 해군 장교로 6.25전쟁에 참가했습니다. 한국의 산하에 반해 남은 생애 57년간을 한국땅에서 살았습니다. 그분은 내가 일했던 한국은행에서 English Editor로 일했고, 퇴임 후에도 증권회사에 자문하는 등 일을 통해 돈을 벌었습니다. 천리포에 땅을 사서 틈틈이 수목원을 일궜습니다.
그가 나무와 숲에 깊이 빠져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나는 이 수목원에 한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 만큼 세상을 각박하게 살았습니다. 몇 년 전에 한 번 온 적이 있었는데, 문을 닫는 날이라서 보지는 못했습니다. 18만평의 땅에 15,000종의 수목이 자라고 있답니다. 모르는 분야에서 숫자가 나오면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한라산에 있는 수종이 700~800종이고, 광릉 국립수목원에는 7,000~8,000종이 있다고 하니, 천리포수목원의 질적 수준을 대강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에 자랑할만한 수목원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단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민병갈, 평생 혼자 살면서 나무와 숲과 결혼했던 남자였습니다.
한국일보 주필을 지내셨던 김수종 선생은 다음과 같이 수목원에 대해 썼습니다.
“동백꽃이 빨간 마지막 꽃잎을 내밀고, 풍년화 산수유 매화 능수버들 같은 봄꽃이 봉오리를 활짝 피웠다가 뜻하지 않는 한파에 시달린다. 이 수목원이 자랑하는 양대 수종, 호랑가시나무와 목련이 돋보인다. 곳곳에 350여종의 호랑가시나무가 산재해 자란다. 목련은 450여종이나 된다. 세계에 현존하는 호랑가시나무와 목련의 종류는 이곳에 거의 다 있다고 한다.”
민병갈 선생이 돌아가신 후, 문국현 의원(창조한국당 대표)이 수목원의 이사장을 맡아서 재정지원 등의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고, 이보식 원장(전 산림청장)은 수목원 살림을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음으로 양으로 돕는 분들이 많아서 수목원이 유지되고 있다고 합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비즈니스모델이 분명했으면 합니다. 모금도 필요하지만, 세계적인 수목원으로 발돋움하려면 수목원 경영을 위한 비즈니스모델을 개발해서 그 자체로서 충분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수목원 전체를 보려면 적어도 3일을 봐야 한다고 하니, 우리나라에서 이만한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곳이 몇 곳이나 되겠습니까? 거제의 외도는 아름답게 정원으로 꾸며놓은 곳으로서 섬과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외도와 비교한다면 어마어마한 콘텐츠를 가지고 있어서, 수목원의 수준 높은 콘텐츠와 인프라는 충분히 좋은 비즈니스모델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바로 앞에는 천리포해수욕장과 닭섬이 있어서 엄청난 천연의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천리포와 닭섬 사이에는 하루에 두 번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썰물이 되면 바지락을 캡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현대적 의미의 경영기법들이 바람직하게 응용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특히 각급 학교와 연계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학생들에게 식물의 세계를 학습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학생들의 수학여행을 여관에서 술 먹고 노는 관행에서 탈피하여 자연 그대로를 학습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나아가 세계인들이 찾은 명소로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식물의 세계를 익히고,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그 자체로서 인간의 정신을 순화시킵니다.
식물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는 사람이라서 그냥 그림만 보시기 바랍니다. 해설가로부터 충분히 해설을 들었는데, 여기에 옮길 수 있는 정도는 아닙니다. 아는 것만 토를 달아 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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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 2009/06/29 1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트랙백 감사합니다. 개구리로 환생하시겠다고 하신 민병갈 선생님은 참으로 한국적인 마음을 가지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파란 눈의 사나이가 평생 일군 수목원의 현장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식물에 대해 너무나 아는 게 없었지만, 그 성과는 엄청나다는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분입니다.
2009/06/29 1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즉시 고쳤습니다요.
나무 2009/06/29 1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리포 수목원에 다녀오셨군요.
천리포 수목원이 개방된 것이 얼마 안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널리 알려지기 전에 방문하고 싶어 알아 본 적이 있었는데
일반인에게 개방이 안 된다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후원회원에게만 방문 예약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섭섭했지만 한편 생각하니 저 같은 뜨내기만 꼬였다면
나무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천리포가 알려지기 전이었는데 사진을 보니 많은 이들이 찾고 있나 보네요.
언급하신 개발과 보존이 공존하는 모델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요즘은 일반인에게도 개방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워낙 귀한 식물들이라서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를 쌓아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는데, 요즘은 적극적으로 지역사회와 상호작용하려고 노력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환경과 수목을 완벽하게 보존하면서, 세계인을 상대로 하는 비즈니스모델은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수목원 관련자들이 마음을 열고 조직적으로 비즈니스 시스템을 개발하여 활용한다면, 세계적인 수목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 학생들뿐만 아니라 특히 일본인들에게, 서양인들에게도 관광코스로 개발해도 좋을 것으로 생각됐습니다.
montreal florist 2009/12/09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숲사진이 무척 아름답네여 잘 보구가여
아이고 캐나다에서도 들르셨군요. 감사합니다. 플로리스트의 눈으로도 천리포수목원을 아름답게 느껴지시는군요. 이런 수목원이 한반도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긴 합니다. 조국을 떠나 먼 곳에서 하시는 모든 사업이 번창하시고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