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느 금융기관을 자문하고 있던 시절의 경험을 소개해야겠습니다. 꽤 오래 전의 일이라 사건의 경위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요지는 그 회사의 임원 중에 한 사람과 내연의 관계를 맺고 있던 여인이 회사 인사부서에 찾아와서 혼인을 빙자하여 간음을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결혼하여 자녀까지 있는 임원에게 그런 일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회사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당연히 나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자문을 구해왔습니다. 그리고는 즉각 퇴출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회사의 전반적인 분위기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나는 장문의 자문의견서를 보냈습니다. 해고를 할만한 사안은 아니며, 필요하다면 가벼운 경고로 충분하다는 것이 요지였습니다. 아내를 둔 남편으로서 외도한 것을 눈감아주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적 영역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저버렸다고 해서 그것을 함부로 공적 영역에서 다루려고 하면 안 된다는 점을 말한 것입니다. 부부싸움을 했다고 해서 직장에서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주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공적인 문제는 공적인 일로, 사적인 문제는 사적인 일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죠.
내가 이런 의견을 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흉흉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기업도 기본적인 도덕과 윤리를 지켜주어야 한다고 줄곧 강조했던 사람이 파렴치범을 싸고 돈다는 것이죠.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서 뭘 얻어먹겠다고 파렴치범을 감싸고 돌겠습니까. 소문이라는 것은 무섭죠. 일단 소문이 그렇게 나면, 나는 파렴피범을 싸고 도는 사람이 돼 버립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야 그 진실을 알게 됩니다.
사적 영역이 공적 영역의 사회적 기대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경우에 한하여 공적 심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당시 내 생각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부부싸움이라도 사적 폭력이 가해지면 공적 영역(예를 들어 경찰)이 개입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논리를 이제 그 사건에 비추어 보면, 내연관계를 유지해 왔던 사적 관계가 회사의 공적 영역에 어떤 손실을 가져왔는지를 따져서 그 손실에 해당 되는 만큼 징계처분을 내리는 것이 적당하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그 손실이란 사실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회사입장에서는 금융기관의 임원이라는 자리는 막중하기 때문에 사회적인, 그리고 윤리도덕적인 흠결이 공적인 영역에서 생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보면 외부인이 인사부서에 찾아와서 큰소리가 나게 했다는 사실 외에는 별로 큰 손실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인사위원회를 열어 직위해제라는 중징계 조치를 취했습니다. 소위 “뽄떼”를 보인 것이죠. 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조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관심을 끄는 것은, 당사자가 직접 연봉을 삭감해도 좋으니 직위해제라는 불명예스런 조치는 취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회사에 했다는 점입니다. 돈보다 명예를 중시한 것이죠. 나중에 그는 직위를 회복했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여기서 말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명예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는 “쪽팔림”이라고 합니다.
지난 번에 썼던 포스트에서 한국은행의 조직개혁을 담당했던 사람들에게 당시 한은의 박철 부총재가 “돈 몇 푼 가지고 사람들을 치사하게 만들지 말라”고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정말, 돈 몇 푼 가지고 사람을 치사하게 만드는 일은 이제 삼가야 합니다. 인간의 정신이 어느 정도 성숙한 수준에 올라서면 돈보다는 명예를 중시하게 됩니다.
법과 원칙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경영하는 사람들도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재판관들도 이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공적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껌 하나라도 받아 씹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껌이라는 하찮은 것이라도 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멀쩡한 사람을 망신주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대신 공적으로 해악을 끼친 경우에는 스스로 부끄러운 줄 알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전과자들이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하겠지요. 껌 한 톨 받아 씹는 것도 엄청난 불명예인 줄 아는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전과자라는 공적인 "쪽팔림"을 당하고도 버젓이 공적 영역에서 활개치는 사회는 분명 정신이 건강한 사회는 아닙니다.
끝으로,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할 것은 조직 생활에서 명예가 실추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제도가 설계되어서는 안 되며, 특히 평가결과가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로 급여가 차별화 되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초등학교 운동회 100미터 달리기에서 꼴찌 했어도 쪽팔리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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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내다보자 2009/06/26 15: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읽으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한국의 조직 생활을 돌아보면 군대와 비슷한 면이 많이 보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군대의 시스템을 차용해서 쓰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할 수 있지요. 불행한 것은 작동방식이 '갈굼'의 수준에서 본질적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것에 대한 해결이야말로 현재 한국의 조직 생활에 있어서 시급히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군대에는 갈굼의 문화가 있죠. 사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적 조직운영시스템은 한마디로 상사의 부하에 대한 무한한 갈굼을 가능케 합니다.
그래서 조금 더 멀리 내다보면, 공정성과 투명성의 가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사회전체적으로 정치권에서 권력을 잡으려는 것도 역시 그 갈굼의 매력을 느끼려는 듯 합니다. 그 권력으로 야당과 반대세력을 얼마든지 갈굴 수 있으니까요. 비극적 역사가 반복됩니다. 군대의 갈굼 문화가 30년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게 없듯이 말입니다.
이것을 청산하는 정치지도자가 있다면, 그는 곧바로 위대한 인물이 될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것을 과감하게 시도했는데, 성공하진 못했습니다. 오히려 갈굼의 대상이 되었죠.
조직에서의 보상에 관한 이슈도 따지고 보면, 갈굼의 문제입니다. 기득권층의 갈굼과 집단적 갈굼, 이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구월산 2009/06/30 1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돈보다 명예, 명예보다 자유로움이 좋다고 한 안철수 교수의 말이 생각납니다. 이렇게 말하면 오버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사실 돈이란 어찌보면 허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년봉 1000만원, 또는 2000만원이 차이난다고 해서 사는게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연봉이 아니라 연봉차이에 들어있는 사람에 대한 잣대가 정말 사람을 못살게 합니다. 이건 명예에 관련된 문제고 명예를 훼손당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공격받게 됩니다.
기업들이 이런 생각에 동의하고 조직문화를 빨리 바꾸는 것이 좋을텐데 잘 알지도 못하고 소화도 못시키는 자유주의 문화가 너무 깊숙이 뿌리내려져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안철수 교수에 대한 신뢰는 국민적인 수준이죠. 그가 그렇게 된 것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돈과 명예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믿고 있는 바를 묵묵히 끝까지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업가들 또는 경영진과는 매우 대조적이죠. 경영자들은 항상 인재중시, 사람중심의 얘기를 하지만, 조금만 어려워지면, 사람을 먼저 잘라내려고 하잖아요. 말과 행동이 완전히 다르죠.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믿을 수가 없지만, 안철수 교수는 사람을 중시했던 경영, 그리고 그런 경영이 진정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죠. 그런 점에서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이죠. 댓글 감사합니다.
석락희 2009/07/02 18: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의 사례에서 교수님의 의견은 참으로 균형있는 판단이군요.
예수님이 오늘에 서울한복판에서 " 죄없는 사람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라고 하면
아마도 죄많은 사람들이 더욱 돌을 던지는 세태가 머리에 연상됩니다.
대개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하면서, 타인에 대해서는 엄격하잖아요. 균형을 잡으면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지식인들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게 이 시대 지식인들에게 주어진 의무니까요.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