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은 성과를 내기 위해 <구조와 시스템, 그리고 절차로서 제도화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때 제도화의 지향점은 성과입니다. 그래서 성과론이 고성과조직(High Performance Organization)의 핵심을 이룹니다. 매 회계연도에 맞추어 성과목표를 설정해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은 그림에서 보듯이 성과책임과 연간사업계획입니다.
연간사업계획이 필요 없다고 극단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미세한 것까지 미주알고주알 언급하는 연간사업계획의 폐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조직의 의지의 표현인 사업계획(business plan)은 어떤 경우에도 필요합니다. 사업계획을 세울 것인가 말 것인가의 논쟁은 사업계획이 구성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사업계획에서 중요한 것은 현실은 결코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계획은 계획일 뿐입니다. 계획이 의미를 갖는 것은 계획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구체적 지향성을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부산에 가려는 목표를 세웠을 경우(즉, 부산에 도착하는 것을 성과라고 정의했을 경우), 계획이란 바로 언제 어떻게 갈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므로, 상황에 따라서는 매우 다양한 수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과목표는, 맡은 직무의 성과책임과 조직의 전략에서 구체화된 연간사업계획을 바탕으로, 설정되어야 합니다. 이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성과목표는 타율적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조직구성원의 자율성에 맡겨 두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당연한 것이지만, 모든 조직구성원은 시간, 예산, 인원수 등을 포함한 연간사업계획에 따라 자신이 맡은 직무의 성과책임을 고려하여 스스로 성과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성과책임이 부산에 도착하는 것이라면, 성과목표는 언제까지 대전에 도착하고, 다시 언제까지 대구에 도착할 것인지를 정의한 것입니다. 물론 이를 위한 수단과 방법도 정의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KTX로 갈 것인지, 자전거로 갈 것인지 등과 같은 것 말입니다.
이렇게 성과목표가 구체화된다는 것이 곧 계량화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매출액, 영업이익률, 자산운용수익률, 시장점유율 등과 같이 계량화가 가능한 것들은 계량화할 수 있겠지만, 불가능한 것을 굳이 계량화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조직의 성장과 발전에 있어서 계량화되는 것보다 계량화되지 않는 정성적인 것들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성과론에서 가장 첨예하게 논쟁이 되는 분야는 성과목표 설정보다는 성과평가에서 발생합니다. 성과를 어떻게 평가해야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평가만큼 논란이 많은 이슈도 없습니다. 평가가 내용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평가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정작 평가의 본질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습니다. 평가의 방법과 기술적 문제에만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 이전에 평가란 무엇인가를 정의해야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평가를 ‘보상결정을 위한 수단 또는 도구’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고, 관리자의 권력행사의 일환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평가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평가는 과거의 잘잘못을 가려서 그 원인을 캐는 것도 아니고, 그 결과에 따라 보상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내가 실무에서 가장 안타깝게 생각했던 것도 바로 이 점입니다. 직원들과 일할 때 가장 크게 실패했다면 아마도 평가에 대한 오해를 풀어내지 못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평가는 결코 보상결정 수단이 아닙니다. 평가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반성하고 전망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대부분의 조직은 이 절호의 기회를 보상에 대한 이전투구의 장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조직구성원은 평가를 더 많은 보상을 받기 위한 두뇌게임으로 생각합니다. 부하는 자신의 패를 상사에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상사 또한 평가를 부하관리의 좋은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부하와 상사 간의 팽팽한 신경전을 벌입니다.
또한 평가는 기득권에 봉사하는 도구로 기능합니다. 나는 평가의 개념에서 이 도구적 성격을 빼버리는 데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인사고과자는 아무도 자신의 평가권한을 놓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권력이란 상대방을 보상하고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하는 것인데, 멍청하게도 이 권한을 축소하거나 없애려고 했습니다. 나는 회사의 간부들을 링컨이나 간디와 같은 위대한 인물로 간주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교육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학생들을 평가하는 목적을, 시험성적으로 잘잘못을 매기는 것이고, 그에 따라 서로 경쟁해서 더 잘하도록 동기부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식의 평가이해야말로 인류를 시기와 질투, 불안과 공포, 폭력과 절망으로 안내하는 교묘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일선 학교 교장들에게 더욱 많은 권한을 준다고 정부에서 발표했습니다. 교장에게 감독권한을 더욱 강화해주면, 과연 교사들의 교육행위의 질적 수준이 올라갈까요? 앞으로 교사들은 아이들에게는 관심이 더욱 멀어질 것이고 교장의 얼굴에 더 신경 쓰게 되겠지요. 교육계의 평가방식에 대한 얘기는 추후에 다시 할 예정임)
평가제도는 기득권의 권력확보 또는 권력유지에 유리하도록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평가제도의 혁신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조직 전체의 잠재력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 권력을 포기하기 전에는 불가능합니다. 누가 권력의 단맛을 스스로 놓으려 하겠는가. 권력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아래의 자리로 내려설 때, 그리고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섬길 때 비로소 변화와 혁신의 바탕이 마련됩니다.
평가(appraisal)는 현 상황을 진실하게 파악하고 미래를 향하여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인지를 살펴보는 피드퍼워드(feedforward)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평가의 본질입니다. 평가자가 평가대상자의 미래를 진심으로 염려하고 장래에 희망의 빛과 애정의 비단길을 깔아줄 때 평가는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평가는 연결되어 있음(connectedness)의 재확인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거나 원인을 밝히고자 한다면, 평가대상자는 심리적 방어메커니즘을 발동하여, 과거의 진실을 밝힐 수 없게 됩니다. 설사, 그 원인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한 부하의 심리적 상처는 지울 수 없게 됩니다. 또한,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면 뇌세포로 하여금 과거의 배선망(neural wiring)을 더욱 굳어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과거와 단절하려면 과거를 건드리지 말고, 망각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평가란 과거와 단절된 현 상황을 사실 그대로 인식하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의지의 표현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성과평가 결과가 보상으로 연결되는 것이 좋으냐 나쁘냐의 논쟁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보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입장입니다. 연결이 안 되면, 결과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 아무런 메시지를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너무 강력하게 연결될 경우에는 많은 부작용이 초래됩니다. 보상은 인간의 정신을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우수한 성과를 낸 유능한 사람에 대한 보상은 시골 초등학교의 운동회에서 받았던 수준의 표창으로 족합니다. 보상은 다만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과 같이 성과에 따른 보상의 차이가 크면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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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시말서 2.0
Tracked from Business Meditation 2009/07/01 14:36 삭제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시말서(始末書)의 목적은 잘못을 한 경우 징계 수위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난 주 모 기관에 입찰 설명회 참석하러 가는데 폭우 속에 고속도로 사고로 인해 도착이 늦어져 하마터면 입찰에 실패할 뻔 했다. 다행히 유찰이 되어 다시 입찰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문제에 대한 반성을 해 보았다. 여러 가지 핑계로 무마할 수 있었지만 내 잘못이 분명히 있었다. 우선 비상 계획(Contingency P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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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이야기 2009/06/25 08: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워낙 어려서부터 평가받는 데에 익숙하다 보니 일을 할 때에도 오로지 '어떻게 평가받을까'에 매달리는 경우들이 생깁니다. 어떻게 이 일에서 최고의 가치를 이끌어낼까, 하는 것보다 클라이언트(혹은 상사)가 어떻게 반응할까를 먼저 신경 써야 하니까요. 그런 것은 결코 '효율'을 이끌어내지 못하겠지요.
평가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평가의 정의와 의미는 매우 중요합니다. 인간은 평가받기 위해 사는 것인지도 몰라요. 그런데, 평가를 어떤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것으로 끝내버리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평가결과가 낮으면 그 사람의 가치도 낮게 나타납니다! 보상이 차별화되죠! 그래서, 사람들은 평가에 목을 매죠.
차이가 없을 수 없다하더라도 인간적인 삶을 위협하도록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기준을 사회가 합의해야 하겠지요. 그것이 우리의 비전이 되도록 해야 하구요.
직장인 2009/06/27 1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며칠새 교수님의 팬이된것 같습니다.
3일내내 탐독하고 있습니다.
지난 7년 직장생활동안 아무도 답해주지 않던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생각이 젊으실수 있을까에 놀라게 하네요
얼마전 회사의 성과를 향상시키려면 차별을 강화해야 한다고 보고서 작성했는데
얼마나 무모한 짓이었나 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더욱 그렇게들 방어적으로 지표와 목표를 세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교수님 말씀대로 팀장들이 간디이길 바랬던 것 같습니다.
성과와 보상을 강하게 연계시킬수록 자신에게도 회사에게도 모르는 사이
거짓말을 하도록 부추킨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걸 모르고 왜 사람들은 본래 악한것인가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계량화 할수 있는것만 계량화 해야한다는 말이 와닿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경영진 입장에서는 모든것을 계량화하지 않고
어떻게 소소하게 의사결정할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자율에 맡길 경우 회사내 프리라이더가 너무도 많습니다.
대부분의 노력하는 사람들이 소수의 사람때문에 더욱 고생합니다. 통제와 계량화의 문제점은 있지만 현실적인 대안이 없어 결국 숫자로 쪼이는 결과가 되는것 같습니다. 윗분들에게 숫자없이 어떤것도 설득하기 쉽지 않습니다.
비극적 현실입니다. 윗분들에게 숫자없이 어떤 것도 설득할 수 없는 현실 말입니다.
무임승차자(freerider)를 걱정하시는군요. 이 세상 어디에도 무임승차자는 있습니다.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니니까요.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누구나 무임승차의 쾌감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쾌감을 만끽하기도 합니다.
한 가족 내에도 어떤 사람(A)은 뼈빠지게 일해서 돈을 버는데, 어떤 사람(B)은 흥청망청 돈을 낭비하면서 탱자탱자 노는 사람도 있습니다. (A)는 (B)를 보면서 부아가 치밀어 오를지도 모릅니다.
(B)가 항상 문제를 일으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보이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B)의 타고난 성품입니다. 말하자면, 제도로 (B)와 같은 사람을 똑바로 바로잡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 경우에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타고난 성품을 바꾸기는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다행인 것은 인류전체를 놓고 보면, 문화와 지역마다 다소 다르겠지만, 그런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둘째, (B)와 같이 보이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럴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닌데, 여러 환경적 요인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무턱대고 (B)처럼 보이는 사람을 (A)와 같은 사람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상사와 부하, 회사와 구성원, 둉료간에 서로 신뢰가 없으면 (B)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실 이게 당연합니다. 신뢰가 무너지면, 서로 마음과 마음의 연결이 끊어지게 되니까요. 단절된 마음들에게 일을 시킬 수 있는 방법은 숫자로 쪼는 것밖에 없습니다. 숫자를 들이대면 구성원들은 논리적으로 저항할 수 없지만, 마음으로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회사의 방침을 따르는 척 하면서도 결국은 그 방침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왜곡시켜 버립니다.
경영진과 상사, 동료들도 구성원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다른 수단이나 대안이 없기 때문에 더 강하게 쪼는 방법을 택하고 맙니다. 악순환하는 것이죠.
그래서, 내가 권하는 방식은 조직문화가 과연 신뢰에 바탕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신뢰가 없으면, 그 어떤 방법도 소용이 없습니다.
조직내에서 신뢰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신뢰는 결코 돈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대흠 2009/07/01 14: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에 시말서 2.0이란 트랙백을 올렸습니다. 그와 관련해서 글 말미에 영능지수(Spiritual Quotient)에 대해 언급을 했는데 드리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지인 중에 다국적 기업(프랑스)에서 관리본부장을 하시는 분이 있는데 그룹의 글로벌 컨퍼런스에 갔었는데 영능지수를 언급하는 프리젠테이션을 봤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미래의 기업이 정말 착하게 진화해 간다면 성과를 높이기 위해 반드시 이것을 필요로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의 성과창출을 위한 노력은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을 통한 인간 육체의 사용에, 지식 정보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종업원의 배후의 깔린 지식에, 그리고 인간의 도덕심, 감성 등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의 다음 단계 관심은 인간의 영성 아닐까 생각합니다.
현대 경영의 트렌드로 영성이 다뤄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조직의 영성지수(S.Q.) 또는 영능지수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책도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조직이 어떻게 영성을 갖게 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개인은 영적 존재로서 영혼의 능력에 따라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겠지만, 조직은 그런 개인들이 최대한의 잠재력을 발휘하게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직 자체가 어떤 영적능력을 갖는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조직에 속한 개개인이 영혼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영학도 제1세대에서, 제2세대를 거쳐, 지금은 제3세대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아래를 참고하시면 도움이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http://mindprogram.co.kr/96
http://mindprogram.co.kr/97
http://mindprogram.co.kr/101
http://mindprogram.co.kr/103
유익한 댓글 감사합니다.
2009/07/10 18: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쓸 테마는 많고, 시간은 딸리고 그렇습니다. 교육문제에 대해서도천천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써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오타 말씀 드린 건데, 혹시 곧이 곧대로 읽으셨다면 기분 나쁘셨을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죄송합니다. ^^;;;
오타를 지적하신 것이군요. 이제 보니 정말 그러네요. 즉시 고쳤습니다. 오타는 우리의 영원한 숙제죠. 지적 감사합니다. 말마따나 교육문제를 추후에 자세히 쓸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이 맞춤법과 오타를 지적해 주셔서 블로그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OTL
김지영 2009/07/17 1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사님.
요 며칠 'BSC의 의도하지 않은 폐해'와 '경영이란 무엇인가'를 찬찬히 읽고 있습니다.
특히 이 '성과와 평가'글에 정말 공감이 많이 갑니다.
평가와 보상이 조직원을 관리하는 도구가 아니라면, 미래를 위한 Feedforward한 것이라면 평가도 이루어 져야하고 돈때문에 사람들을 치사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우수한 사람에게는 소박하지만 명예로운 수준의 상징적 보상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에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하지만 평가가 어떻게 활용되건, 그 결과를 활용하려면 최대한 평가의 결과가 객관적이야 하는데..이 '객관화'라는 것에 이르러 의문이 생깁니다. 일반적으로 회사에서 사용하는 지표들이야 과거부터 사용해 오던 것이지만, 박사님께서 다른 글에서도 여러차례 강조하셨듯이 계량화 지표화 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들이 많다고 하셨는데, 이는 어떻게 해야하나요?
지표화 혹은 계량화 할 수 없는 가치를 빼고 기존의 항목으로만 평가한다면, 올바른 평가 결과를 기대할 수 없게되고 따라서 평가 결과의 활용에 왜곡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가치들을 평가에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까요?
최근 저의 큰 고민 중에 하나여서, 박사님께 염치불구하고 여쭈어 봅니다.
직접 찾아뵙고 고견을 듣고 싶은데, 차마 그럴수는 없어서 여기에 글을 남깁니다.
김지영 선생이 왜 질문을 하지 않나 생각했지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분명한 사람에게는 항상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지요. 그래서 질문은 정말 아름다운 행위입니다. 질문이야말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과평가를 객관화 해야겠는다는 거지요? 사람들은 성과평가 결과에 불만이 많지요. 객관화 되지 않았으니까 말입니다. 사회과학에서 객관성이란 자연과학적인 객관성과는 의미가 완전히 다릅니다. 사회과학에는 항상 인간적 요소, 즉 가치(value)의 문제가 개입되기 때문입니다. 자식의 중요성과 치약의 중요성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릅니다. 사람에 따라서도 다르죠. 가치란 계량화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가치를 자연과학적 엄밀성으로 측정하려는 노력은 항상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사실과 그 사실에 붙어 있는 가치를 상대방과의 논의를 통해 합의(consensus)하는 것입니다. 이 합의에는 숫자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숫자로 설사 표현되었다해도 그것이 객관화된 것은 아닙니다. 계량화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래 포스트를 읽어 보세요.
http://mindprogram.co.kr/191
http://mindprogram.co.kr/182
평가를 객관화 함으로써 상사와 부하 사이에 수정처럼 투명한, 그래서 아무도 꼼짝할 수 없도록 성과관리를 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성과지표와 그 계량화에 온 힘을 쏟다가 진을 다 빼버리게 됩니다. 불가능한 일에 도전한 것이죠. 그렇게 쓸데 없는 데 신경쓰지 마시길 바랍니다.
성과관리와 성과평가, 그리고 그 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을 아래 소개합니다.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http://mindprogram.co.kr/265
아무쪼록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김지영 2009/07/17 14: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게 빨리 회신을 해주시다니요..감사합니다. 박사님.
권해주신 '성과관리 시스템의 패러다임을 바꿔라'는 방금 주문했습니다.
읽어보고 다시 코칭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사님께서 의아하게 생각하셨듯이, 사실 박사님께 드리고 싶은 많은 질문과 반론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뭐랄까 박사님의 글들이 제게는 상당히 과격하게 다가왔고 이것이 저의 이해가 낮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감히 질문을 드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박사님의 글들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면서, 이해도 많이되고 동의되는 부분도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게 과격하게 느껴지는 그리고 동의되지 않은 부분이 남아있습니다.
지난 번 SEM연구회에서 박사님과 김은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신 John Kotter와 Mintzberg의 Paper를 읽어보았습니다. Kotter는 리더십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비전이나 전략을 창조하는 것이며, 관리(Management)는 조직이 복잡해짐에 대응하여 계획된 결과를 유도하는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으며, 과도한 관리로 인하여 생기는 폐해를 지적하였으나, 리더십과 관리가 적정한 선에서 조정되어 운영되어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사실 이 정도의 수준에는 동의하지만, 박사님의 말씀처럼 '관리 자체를 하지 말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회사는 가족보다 그 규모가 너무 크고 복잡하니까요. 제가 박사님의 글을 잘못 이해한 것일까요? 아니면 조직을 너무 불신하고 있는 것일까요?
다시 고민해 보겠습니다.
처음에 한두 마디 듣고 훽가닥 뒤집히면 안 되죠. 한 남자 첫 눈에 반해 홀랑 넘어가면 안 되듯이 말이예요. 길고 길게 요리조리 따져보고 그래야 합니다. 얼마든지 반론이 가능하지요. 너무 과격하게 느껴질 수도 있답니다.
리더십과 관리가 적당한 수준에서 믹스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인은 뭐니뭐니해도 쫘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양한 사고의 스펙트럼이 우리 사회에는 필요합니다. 조직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똑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과지표를 측정해야 한다, 다른 사람은 말아야 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이런 논쟁을 통해서 가장 좋은 길이 어떤 것인지를 조직 스스로 정해 나가는 것이죠.
현재 하고 있는 것이 못마땅하기 때문에 조금씩 개선해 나간다는 말입니다. 배움이 깊고 넓어지면 빠르게 개선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느리게 되겠지요.
정답을 찾아서, 그 묘수를 조직에 심으면 되겠다는 생각이야말로 위험한 발상입니다. 세상에 그런 묘수는 없답니다. GE에 성공한 것이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일이지요. 조직은 자신의 성숙도에 맞는 시스템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이런 문제에 봉착해서 어떻게 해결해 나갔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참 좋습니다. 학자들의 견해도 살펴보구요. 나는 김지영 선생이 끊임없은 질문과 반론을 펴 주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