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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에서 강도가 옆구리에 칼을 대고 돈 내놓으라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얼른 꺼내주겠죠. 그리고 그 자리를 피하면 됩니다. 기분이 매우 좋지 않겠지만, 오늘 하루 일진이 안 좋았다고 생각하면 그뿐입니다. 앞으로 조심하면 됩니다.

 

그런데, 거리에 온통 강도와 절도범이 우글거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심각한 문제가 생기겠죠. 부자들은 사설경비원을 고용하거나 부자들만 사는 동네를 따로 조성해서 살면 됩니다. 하지만, 서민들은 어떻게 될까요? 선택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부자동네로 이사 가서 부자들과 함께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상강도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런 사회에서 중간지대는 없어집니다.

 

실제로 남미국가들은 상당부분 이렇게 변했습니다. 미국사회도 지난 30년간 신자유주의 이념에 따른 경제정책의 결과로 빈부의 차가 심해져서 부자동네와 가난한 동네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인도와 중국도 경제개발에 따른 빈부의 차이가 점차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거기다 공무원들의 부패가 겹쳐서, 도시와 농촌의 격차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입니다.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사회적 갈등의 차원을 넘어선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도 빈부격차가 극심해졌다고 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이명박 정부는 지난 좌파 정권 10년의 결과라고 비난하고, 진보진영에서는 우파 정권의 부자들을 위한 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가 양극화를 초래한다는 견해에 대해서,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많은 경제학자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불공정한 경쟁

어쨌거나 부유층과 강대국은 악마의 맷돌을 계속 돌림으로써 서민들과 가난한 나라로부터 돈을 빨아냅니다. 그 메커니즘은 복잡한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매우 단순합니다. 노상강도질보다 더 무자비하지만 스마트한 방법이 있습니다. “자유경쟁입니다. 신자유주의 이념은 노상강도처럼 무식하게 돈을 빼앗아가는 방법을 쓰지 않습니다. 경쟁을 시키면 됩니다. 이긴 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경쟁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는가를 따져봐야 합니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100미터 달리기 시합을 해봤을 겁니다. 누구나 동일한 출발선에서 뛰기 시작합니다. 1,2,3등을 뽑아 시상대에서 상을 주고 칭찬합니다. 등수에 들면 그래서 어깨가 으쓱 올라갑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뜀박질을 잘 한다고 인정해줍니다. 여기서 주는 상은 사용가치보다 뜀박질에 대한 사회적 인정(recognition)입니다. “자유경쟁이라면 우리는 보통 이런 정도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유경쟁은 매우 공정한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자유경쟁의 원리는 선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자유경쟁이 선하고 공정한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초등학교 운동회는 눈에 보이는 게임이므로 속임수가 있을 수 없습니다. 비록 초라한 운동회지만 엄격한 규칙이 있습니다. 누구나 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한다는 규칙 말입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서 기회도 균등합니다. 이 규칙을 어기면 그 동네에서 배겨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규칙을 통과하여 1등을 한 사람도 전부 다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인정을 받는 것뿐입니다. 물질적 보상은 단지 상징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시장경제에서 경쟁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우선 시장경제는 보이지 않는 비물질적 세계라는 점이 운동회와 다릅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수많은 속임수가 횡행하지만 잘 모르고 있습니다. 특히 정신적인 속임수가 워낙 많아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속임수인지 분간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우리의 정신 속에 아주 깊이 파고들어 세뇌되어 있기 때문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뚜렷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선 예를 들어볼까요. 가난한 집 아이들은 그 아이의 타고난 재능과는 상관없이, 학업기회가 넉넉하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일류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출신배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시장경제의 자유경쟁원리가 적용된 이후, 지난 수십 년간 부유층 자녀들의 일류대학 합격률은 지속적으로 상승했습니다. 교육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돈이 없는 집안에서는 일류대학을 다니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헌법 제31조 제1)라는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의 학습능력이 아니라 집안의 경제능력에 따라 교육을 받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문제 삼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시장경제에 세뇌되었기 때문입니다.

 

갈등과 폭력은 어디서 오는가

현실은 지금 어떤가? 가난한 대학생들에게 은행융자를 알선하면서 직장인 신용대출금리보다 더 높은 금리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나는 학자금융자 제도야말로 기득권층이 정부를 끼고 벼룩의 간을 빼먹는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대학마다 매학기 등록금인상 때문에 학생들이 데모를 하고, 심지어 여학생들이 삭발투쟁을 하는 장면을 볼 때 가슴이 무너집니다. 기성세대와 정책당국자들은 젊은이들의 이런 절규에 눈도 깜짝하지 않는 저 비정함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요? 대학생들의 등록금은 정말이지 국가가 책임져야 할 영역입니다.

 

내 얘기의 핵심은 우리 사회는 매우 불공정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불공정한 사회가 인간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자유경쟁의 전제는 동일한 출발선이어야 하는데, 그 전제가 무너졌기 때문에 더 이상 공정한 경쟁이 아닙니다. 현실의 불공정성을 자유로운 경쟁이라는 포장으로 살짝 바꿔서 속임수 게임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게임의 이면에는 부유층의 가난한 자들에 대한 정신적 폭력이 숨어 있습니다.

 

이런 식의 불공정한 게임은 이긴 자에 대한 인정과 존경보다는 불신과 질투심을 유발합니다. 심지어 적개심을 품게 합니다. 제도적으로 대항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불공정성이 이면에 깊이 숨어 있기 때문에 뭐가 문제인지는 정확히 파악하진 못했지만, 겉에 드러난 현상만을 보면서도 불안을 느낍니다. 불안을 느낀 사람은 그 원인을 모를 때, 자기보호를 위한 폭력적 방법을 구사하게 됩니다. 사회적 불안과 갈등은 이러한 불공정한 게임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타짜>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김혜수의 ,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대사가 압권인 영화입니다. 바로 그 영화에서 타짜가 타짜인 것은 속임수에 능하기 때문입니다. 공정한 게임이라면 노름판에서 승률이 통계학적 범위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하지만 속임수를 쓰면 늘 이길 수 있습니다. 시장에서 자유로운 경쟁이라는 미명하에, 기득권층은 늘 이기는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원인은 바로 이것입니다. 여기에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폭력성이 있습니다.

 

노상강도질과 타짜의 속임수는 범법행위로 처벌 받지만, 전혀 공정하지 않은, 그러나 자유로운 경쟁이라는 속임수로 이루어진 폭력적인 게임은 처벌은커녕 더욱 장려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유로운 경쟁은 심지어 민주적인 모양새를 갖추고 있습니다. 시장경제에서 취업시장은 자유로운 계약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고, 상거래는 누구도 강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잘살고 못사는 것 역시 자기책임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장메커니즘은 겉으로는 매우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한 꺼풀 벗기고 속을 들여다보면, 기득권층에 유리하도록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영화 <타짜>에서처럼 불공정한 게임이 된다는 말입니다.

 

, 공정한 게임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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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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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시장경제의 법칙

      Tracked from BIZ & Life Essay [천하백수] 2009/11/06 04:49  삭제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자는 자유주의 시장경제론자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시장의 논리가 최대 가치이고, 정부 규제는 최소한의 선택이며,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라는 논리를 펴나가고 있는 듯했다. 이러한 논리는 지식인과 학자적 관점에서 시각의 균형을 잃어버리고 한쪽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일어난 오류라고 말하고 싶다. 저자가 얘기한 시장의 순 기능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리고 시장 경제에서 균형이라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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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외감 2009/06/15 19: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선생님 말씀 들으니 경영, 경제도 무지하게 재미있습니다..

      오늘도 알찬 정보, 풍요로운 말씀 잘 배우고 갑니다.. 꾸벅^^

      • 최동석 경영연구소 2009/06/15 23:25  댓글주소  수정/삭제

        세상의 모든 분야가 다 재미있겠지요. 저는 이 분야를 알기 때문에 떠드는 것이지만,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예전에 잠시 교양을 위해 물리학 책을 보다가 굉장히 재미있다고 느꼈습니다. 경영학을 괜히 시작했다고 느꼈을 정도였습니다.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 나무 2009/06/15 1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 읽었던 어떤 책에서 '평등이란 기회가 공정하게 주어지는 것'이라는 구절이 생각납니다. 자유경쟁이란 동일한 출발선이라는 것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운동회에서 뜀박질을 하던 순수한 아이를 타짜로 만드는 세상이 되어 갑니다.

      보릿고개 시절에는 배는 고팠지만 지금은 배가 부른데도 그 시절 보다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점점 불공정한 사회가 돼서 그렇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이해하기 쉬운 비유를 섞어 쓰신 좋은 글을 보고 갑니다.

      • 최동석 경영연구소 2009/06/15 2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시장경제가 확대되면서 인간사회의 공동체적 연대감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개별적인 원자만 남아 있는 것 같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각각 뜯어먹기라고나 할까요. 각개전투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돈은 점점 많아지는 것 같은데, 사는 것은 그만큼 더 팍팍해지고, 불행해지고, 우울해지고, 불안해지고 있습니다.

    3. 짧은이야기 2009/06/16 0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이 그랬습니다. 자신은 기부를 하는데, 이건 양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요.

      사회 양극화가 점점 심해져서 가난한 사람들이 사회불만세력으로 자리 잡는 비율이 많아지면 가진 자들은 타겟이 되고 유괴, 강도 등의 강력범죄가 늘어나는데, 자신의 소중한 딸이 유괴당하지 않게 하려면 이렇듯 기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요..

      정말 맞는 말입니다. 출발선이 심하게 어긋나 있는 사회에서, 대통령은 '나처럼 열심히 하면 너도 용 될 수 있어. 네가 열심히 하지 않기 때문에 그따위로 머물러 있는 거야'라고 잔인하게 말하고, 시골에서 병원을 하시는 분은 저렇게 말씀하시는군요.

      과연 공정한 경쟁이 가능할까요? 다음 글이 기다려집니다.

      • 최동석 경영연구소 2009/06/16 1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진 사람들의 양보와 배려가 없는 사회는 "영혼이 없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 글을 올렸지만, 별 것 아닙니다. 공정하게 해라, 그리고 투명하게 해라. 뭐 이런 공자님 말씀입니다.

    4. 섬강 2009/06/18 1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일하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내 반 아이들의 1/3이 편부모 혹은 조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아이들이었습니다.
      다른 학급도 비슷했지요.
      가정의 달 행사로 '부모님께 편지쓰기'를 하고 잘 된 것을 골라 시상을 했습니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에게 부모에게 편지쓰라는 것은 잔인한 요구라 판단했습니다.

      학교에 '기회 균등'의 문제를 지적하며 고칠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교장측 교사 중에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며 시상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현직교사 중 드물게 '윤리교육학 박사'였답니다.
      모 대학에 강의를 맡아 일 주일에 이틀은 일찍 나가는 사람이었지요.
      그에게 '윤리'를 배우는 학생들이 딱했답니다.

      교무회의에서 토론 후 표결을 했는데 내 주장대로 '시상하지 말자'로 결정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냥 시상했답니다.
      '교무회의'는 의결기구가 아니고 모든 권한이 교장에게 있기 때문이지요.

      내 반만 시상을 안 했지요.

      '부모님께 편지쓰기'를 '고마운 어른께 편지쓰기'로 바꾸는데 2년 걸렸습니다.
      교장이 바뀌고 나서야 바꿀 수 있었던 겁니다.

      보이든 안 보이든 '기회균등' 이런 거 생각하는 사람 교육계에 많지 않습니다.

      돈 없어 공부 기회 없어지고, 심지어 학비때문에 자살하는 학생이 나와도 눈도 꿈쩍 안 하는 사회입니다.
      자사고라는 귀족학교 만들려하는 정권입니다.
      과학고에 일반고보다 더 많은 예산을 지원하는 것 당연히 여기는 사회입니다.

      우리 나라 교육제도 '불공정한 교육제도'라고 할 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