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소속 나경원 의원이 엘르라는 잡지의 모델이 되어 화보를 찍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모델료는 자선단체에 기부했다고 합니다. 나는 이 사건에 대해 국회의원이 잡지모델이 되어 화보사진을 찍을 수 ‘있다 없다’를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업적이지 않은 공익잡지에는 얼마든지 모델이 될 수도 있고, 사진도 찍을 수 있습니다. 홍보대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상업화될 수 있는 영역과 상업화되어서는 안 되는 영역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이 경계가 모호하지 않습니다. 공적 영역은 어떤 경우에도 상업화되어서는 안 되는 영역입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의 상업화 현상은 항상 인간의 정신을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나경원 의원은 자본주의적 이념이 갖고 있는 무차별적 상업화의 위험성을 간과했던 것 같습니다. 공적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상업화 논리로부터 완벽하게 떨어져 나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를 객관적 시각에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공적 업무를 수행해야 할 국회의원이 상업적인 일에 자신의 몸을 맡겼다는 것은 이미 그 정신이 상업화에 의해 상당히 왜곡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해명하는 과정 역시 아리송합니다. 모델료는 기부했다 어쨌다, 요즘 찍은 게 아니고 4월에 찍었다, 등등… 모델료와 촬영시기는 사태의 본질이 아닙니다. 상업적인 잡지에 몸을 맡긴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나경원 의원은 자신의 직무가 어떤 것인지를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잘못됐다는 얘긴지 아직 잘 모르고 있는 듯합니다. 자신은 억울하다는 것이죠.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가 인간의 정신에 파고드는 집요한 상업화 또는 자본화 현상은 이렇게 무섭습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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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이야기 2009/06/15 1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 의원은 '예쁘기' 때문에 모델을 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는 사실상 정치인으로서 업적을 남긴 것이 없습니다(정치인으로서 업적이란 법안을 발의하여 우리나라가 좀 더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는 등의 활동을 뜻합니다). 오히려 딱딱한 기득권 정당, 부정부패를 저지른 정당인 한나라당에서 예쁜 얼굴로 '얼굴마담'을 하며 한나라당의 이미지를 '가꾸는' 역할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이가 모델로서 화보를 촬영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었거나 국민적 인기를 얻었거나 하는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오직 예쁘기 때문이었습니다. 국회의원이자 전직 법조인이었다는 '지식인'의 수준이 참 의심스럽습니다.
내 생각에는, 정치인들은 자신의 얼굴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을 좋아해서 그렇게 된 것 같은데요. 대중적인 정치인이 되려면,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지만 금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잘 구분하지 못하면, 상업화를 추구하는 자본주의라는 "악마의 맷돌"에 빨려 들어가는 것이죠. 공적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엉뚱이 2009/06/16 1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촬영을 해서 돈을 받았다라는 것보다는 '뭔 생각으로 사는가?'라는 생각 때문에 욕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내용이 아닌 이미지를 팔기 위한 생각으로 한 행동이기 때문에 '역시나' 욕을 먹는 것이 아닐까요?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원래 돈이 될만한 것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상품화하도록 유혹합니다.
지적하신 대로, 아무 생각없이 자신의 이미지를 팔기 위해 상업적인 잡지에 몸을 맡긴 것이로군요. 약간의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도 없이, 그저 이미지를 팔아보려고 그랬다는 것이군요. 공감합니다.
지나가다 2009/06/22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읽고도 부끄럽게도 나의원의 잘못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수입도 기부했고 다른 연예인과 유명인사들도 함께 했다니 의원도 공인이기 전에 사람이니 누구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선 저런 자유를 누리는 것쯤은 사생활로 존중해줘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 속에 먼저 떠올랐습니다.
나의원을 비롯해 저같은 우매한 대중들의 이런 어리석은 판단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 진 것일까요? 저런 결정을 거리낌 없이 하게되기까지 금뱃지를 단 공인으로서 몸가짐을 살피도록 가르치지 못한 것은 무엇을 탓해야 할까요? 나의원 개인의 못남 보다도 이런 판단이 아무런 문제없이 받아드려지는 사회가 먼저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과연 미국이나 서양국가 등 개인의 사생활이나 자유를 가장 중요한 가치 중에 하나로 여기는 곳에서는 어떻게 받아드릴까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 글입니다.
괜찮으시다면 고견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국가와 공공에 대하여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 예를 들어 국회의원과 그 보좌관들, 공무원들, 지자체 정치인들(여기서 지자체 의원들은 다소 견해차이가 있을 수 있음), 기타 정부산하 기관을 포함한 공공기관 임직원들, NGO, NPO 관련자들은 자본주의적 상업화 논리에 노출되어서는 안 됩니다. 절대로!!!
이들은 장사꾼들로부터 껌 한 조각이라도 받아서 씹으면 안 됩니다. 물론 식사대접도 곤란합니다. 상업화의 논리에 노출되는 것은 결코 사생활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생활이 공공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생활이 돈에 연루되면 공정한 의사결정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외국의 사례를 볼 필요도 없이 명백합니다.
그래서, 나는 부패와 사회적 정의를 세우는 가장 중요한 첩경은 공직자들의 급여를 싱가포르처럼 대폭 올리는 대신, 껌도 받아 씹지 못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기준이 자본주의적 상업화의 논리에 의해 매우 흐려졌기 때문에, 공사구분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돼가고 있습니다. 사생활의 자유를 만끽하고 싶으면, 공직에 나가지 않고 개인적인 사적 생활을 즐기면 됩니다.
높은 자리일수록 더욱 엄격한 잣대로 도덕성과 정직성을 요구해야 합니다. 자본의 논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지금 윗물이 더럽다보니 아랫물은 더더욱 더러워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montreal florist 2010/01/12 05: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지네여, 멋진 이미지를 원했나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