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컴브리아(Cumbria)의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 지방 출신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를 찾았습니다. 워즈워스는 호수지방의 가장 북쪽 도시인 코커머스(Cockermouth)에서 태어났습니다. 출생지는 기념관으로 개조되어 일반에게 개방하고 있습니다. 그는 결혼해서 그라스미어(Grasmere) 호수 근처의 조그마한 도브 코티지(Dove Cottage)에서 중년을 지냈습니다. 이곳에서 8년간 살았는데 그라스미어 호수와 산책길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가장 왕성한 시작(詩作)활동을 했습니다. 1813년부터 죽을 때까지 삶의 후반기를 라이달 호수 근처의 라이달 마운트(Rydal Mount)에서 보냈습니다. 세 곳 다 기념관으로 개조하여 관람객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 군데 다 가볼 정도로 시간 여유는 없었습니다. 한 곳에만 가기로 했습니다. 도브 코티지보다 지명도가 낮지만 노년의 원숙한 시기를 보냈던 라이달 마운트를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2백년도 더 된 집입니다. 첫 인상은 '시인인데 가난하지 않았구나'였습니다. 내 머리 속에는 시인은 늘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우리나라 시인들은 대부분 가난하죠. 그래야 시가 써지는 줄 알았습니다.
라이달 마운트의 집은 언덕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언덕 아래로 내려가면 산책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큰 정원과 작은 오솔길이 잘 꾸며져 있습니다.
결혼하여 젊은 시절 살았던 조그마한 도브 코티지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작은 저택수준이었습니다.
언덕 위에서 멀리 라이달 호수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왼쪽에 있는 흰색 텐트에는 관람객을 위해 차와 케익을 즐길 수 있는 시설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큼지막한 정원이 잘 가꾸어져 있고 간단한 산책도 할 수 있습니다.
1층 거실에는 200년 전의 살림살이를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가난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당시 백작의 법률대리인이었기 때문에 큰 저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13살 때 아버지가 죽었는데, 다른 법률가들과는 달리 자신의 서재에서 자녀들에게 밀턴, 세익스피어, 스펜서의 저작들을 포함한 시를 가르쳤습니다.
부친의 사후에는 친척들의 손에서 자라났지만, 워즈워스는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그들과 불화했습니다. 18살에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마도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자연과 친척들에 대한 적의가 그의 시상에 어떤 형식으로든 반영되었을 것입니다. 그의 시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 그리고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 사랑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1층을 둘러보고 난 딸의 소감은 간단했습니다. 얻은 교훈은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것들은 절대로 버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시간의 때가 묻으면 모든 것이 보물로 변한다나 어쩐다나… 이제부터는 절대로 버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입니다. 이층으로 올라가면 그가 썼던 연애편지들이 있습니다. 출판된 것인데, 읽어보진 못했습니다.
시인의 삶이라고 해서 남다르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대륙에서 프랑스혁명(1789년)이 일어나자 워즈워스는 21살(1791년)의 나이에 자연과 인간에 대한 관심이 깊어져 직접 프랑스를 여행합니다. 그곳에서 아네트 발롱이라는 프랑스 여인과 사랑에 빠져 이듬해 캐롤린이라는 딸을 낳습니다.
결혼을 약속했지만 돈이 부족한 상태여서, 혼자서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마음이 살짝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아네트와 캐롤린에 대한 그리움은 크게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시에도 많은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프랑스에 남은 피붙이들을 끝까지 경제적으로 지원해 주기로 약속을 했답니다. 이런 얘기는 당시에는 쉬쉬해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층에서 정원을 보면 참 아름답습니다. 이날도 여지없이 비가 부슬부슬 내렸는데, 많은 관람객이 있었습니다.
아무튼 워즈워스는 유산을 물려 받고 32세(1802년)가 되어 어릴 때 친구였던 메리 허친슨과 결혼합니다. 그리고 네 자녀를 두지만, 그 중 둘은 어린 시절에 죽습니다. 그는 결혼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게 됩니다. 한 때의 불장난이 더욱 원숙한 시를 쓰게 했을까요?
시에 관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정원으로 나와 산책을 하기로 했습니다.
산책하다 꽃을 보더니 찍어달라는군요. 예전에는 아내가 꽃만 보면 옆에 서서 찍어달라고 하더니 요즘은 딸이 똑같이 그럽니다. 꽃 옆에 서면 시가 저절로 나온다나 어쩐다나...
지금까지 살면서 시와 관련하여 나는 몇 차례 가벼운 홍역을 치렀습니다. 그 첫 번째는 학생 때 시를 써보고 싶어서 끄적거렸었는데, 시인으로 사는 게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잘 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를 읽으면 너무 어려워서 이해하기 곤란했습니다. 시를 쓰는 재주가 없으니 시에 관한 글을 쓰면 되겠다고 생각해서 <현대시(現代詩)의 난해성(難解性)에 관한 일 연구(一 硏究)>라는 멋드러진 제목으로 논문을 썼습니다. 이승훈 교수님(시인, 한양대 국문과 교수로 정년퇴임)을 찾아가 보여드렸습니다. 잘 썼으니 잡지에 내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잘 썼다는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잘 몰랐지만, 좌우간 용기를 얻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xx에 관한 일 연구”와 같은 제목을 붙이는 것이 유행이던 시절이라서 나도 폼 나게 그렇게 제목을 붙였습니다. 요즘 같으면 “현대시가 어려운 이유” 또는 “현대시의 어려움에 대하여”라고 했을 텐데 말입니다. 근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수님의 ‘잡지에 내도 되겠다’는 충고가 도대체 어떤 잡지인지를 알 수 없어서 고민하다가 학보사에 보내서 교내잡지에 실리고 말았습니다. 대학 2학년 때의 일이었습니다. 워즈워스는 20대 초반부터 자연과 인생에 대해 시를 썼습니다. 세계에 대해 민감한 촉수를 가진 사람들이 시를 쓰는 모양입니다.
시에 대해서는 인연을 끊고 있다가 80년대 들어서 최승호 시인의 <대설주의보>를 읽었습니다. 시인들은 시대변화에 대한 감수성이 남다르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몇몇 시집을 사서 읽곤 했는데, 머리에 담아 두진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내가 학창시절 두툼한 Norton Anthology를 들고 다녀서 영시를 가끔 훔쳐 보긴 했지만, 더구나 영시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왜냐구요? 경영학에서는 시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시 쓰는 마음도 필요 없습니다. 시집을 마케팅하거나 판매하면 얼마의 이익을 남길 수 있을지를 가르칩니다. 계산하는 마음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시 쓰는 행위는 가장 비효율적인 것으로 암암리에 간주합니다. 시와 시인은 원가계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내가 그동안 수없이 연탄재를 발로 찼거든요. 결혼해서 삼선교 산꼭대기에 어느 집 문간방에다 신혼살림을 차렸는데, 하루에 두번 19공탄을 갈아야 했습니다. 꺼뜨리면 번개탄으로 다시 피워야 했죠. 추운 겨울에는 하루에 세 번도 갈아야 했습니다. 하얗게 된 연탄재를 빼서 쌓아 놓는 게 아주 귀찮은 일이었죠. 이 시를 읽으면 충격받을 사람이 많을 겁니다.
이런 시를 쓸 재주는 없다 해도 읽을 수 있는 마음이라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권의 시집을 사서 가끔 읽지만 여전히 경영학이 머리 위에서 왔다갔다 합니다.
윌리엄 워즈워스 얘기를 하다가 샛길로 빠졌네요.
이층에 복도와 계단 사이에 붙어 있는 시 한편을 보았습니다. “무지개”라는 시였습니다. 아내 얘기는 이 시가 무지하게 유명한 시라네요.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보니까 정말 유명하긴 한 모양입니다.
여기에 다시 옮겨 보겠습니다.
A Rainbow in the sky: 내 가슴이 뜁니다.
So was it when my life began; 내 어릴 적에도 그랬고,
So is it now I am a man; 어른이 된 지금도 그렇습니다.
So be it when I shall grow old, 나이 들어서도 역시 그럴 것입니다.
Or let me die! 만약 그렇지 않으면 죽어도 좋겠지요!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입니다.
And I could wish my days to be 내 삶이 자연의 겸허한 마음으로
Bound each to each by natural piety. 하루하루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번역은 이것 저것 참조해서 내 멋대로 한 것입니다. 나 역시 무지개를 보면 가슴이 뛸 정도로 세상에 민감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 이웃에서 벌어지는, 무지개보다 더 한 화염의 충격에도 무덤덤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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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이야기 2009/03/30 1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뉘어요. 문학 때문에 앓아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선생님도 '문학 병'을 앓으신 분이라는 것을 짐작했지만 역시 그랬군요. ^___^
저도 대학시절 학비와 방세, 생활비로 허덕이는 통에 책을 원하는 만큼 구입할 수는 없었던 터라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끝나면 저 자신에게 책을 선물하곤 했어요.
그때는 문지사와 창비의 시집이 3000원하던 시절이었어요.
이성복, 황지우, 오규원, 기형도 같은 시인들 시를 읽고 또 읽고 그러면서 20대 초반을 건너왔네요.
그런데 선생님은 참 대단하세요. 시를 써 보려다 시에 대해 써 보시기도 했다니..
저는 시를 참 못 쓰겠어요. 대신 소설을 좀 끼적이긴 했습니다만.. ^___^;;
(제 닉네임인 '짧은이야기'가 사실은 '소설'을 제 멋대로 우리말로 번역한 거랍니다. ^___^;;
완전 부끄럽군요. 이런 사연까지 소개하려니..)
얼굴도 모르는 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끌어내는 선생님의 글 솜씨야말로 시인보다 더 시인다우십니다.
앞으로도 계속 기대할게요~
그러고 보니 소설이 '짧은이야기'로군요. 좋은 이름이군요. 맞아요.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나는 이렇게 구분합니다. 누구나 문학을 좋아하는 데 문학을 할 수 있는 환경에 처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환경에 처한 사람으로 말이죠.
나는 정말 가난했기 때문에 문학의 미음자도 근처에 갈 수 없었어요. 우선 밥 세끼를 먹고 살아야 했으니까요. 세 끼를 걱정없이 먹고 살게 되었을 때는 이미 미음자에서 너무 멀어졌기 때문에 다시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죠. 내가 그런 상황입니다.
나는 아직 삼국지를 못 읽었어요. 아들놈은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하고는 인생을 논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놈은 열두번쯤 읽었다고 해요.
은퇴 후에도 삼국지를 읽으려고 했지만, 지금까지 이것저것 할 일들이 많아서 못읽고 있습니다. 죽기 전에 읽고 아들과 인생을 논할 수 있게 될지 모르겠네요.
네, 좋은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섬강 2009/03/31 1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엄청 재미있게 읽었어요.
사진도 좋고.
6,70년대와 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19공탄을 알테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아마도 19공탄이 무슨 말인지 모를 겁니다.
세대가 바뀌면서 사회를 해석하는 토대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시대가 바뀌어서 이런 기록들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행은 가끔 생각의 틀을 바꾸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eunbee 2009/04/01 14: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육학 시간에 교육심리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자기강의실 앞쪽 꼭대기 벽에
윌리엄 워즈워스의 '무지개'를 써서 걸어 두었지요.
저는 그 시가 좋아서 외웠습니다.
그리고 먼뎃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보면/파리와 그 근교에는 무지개가 참으로 자주 뜬답니다./
언제나 워즈워스의 詩와 교육학 강의실이 생각나며
나는 지금까지도 그 시처럼 살고 있구나..하면서
안도의 숨을 쉬지요.ㅋㅋ
어제는 도서관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마르셀 프루스트/ 1권을 꺼내 들었습니다.
서른여섯살이 된 아들이 열네살 때 저에게 선물했던 책이었는데
단행본으로 된 그 엉터리 번역본을 읽다가 일단은 실망을 해서, 던져버린 후, 드디어 어제
본격적으로 11권으로 번역된/김창석/ 책을 읽기로 맘먹었습니다. 하하하
어언 22년이 흐른 지금....
선생님께서도 삼국지를 오늘 당장 손에 쥐어 보세요.
그리고 아드님의 신념에 부응하세요. *^&^*
제 블로그 어딘가에는 기형도의 詩도 훔쳐다 놨지요.ㅋㅋㅋ
저는 치매예방책으로 블로그에 드나들지만서두...
좋은 책을 많이 읽으시는군요. 부럽습니다. 나는 그렇지 못해요. 삼국지는 고사하고 일국지도 아직 볼 여유가 없네요. 이것 저것 할 일들이 생기니 원...
힘을 내서 언젠가 읽어야지요. 치매를 걱정하시는군요. 글을 읽고 블로그 열심히 채우시면 치매는 뭐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감사합니다.
데스테 2009/04/14 19: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I see trees of green ,red roses ,too...
The colors of the rainbow so pretty in the sky
...I think to my self what a wonderful world..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가 생각나는 군요.
폐허의 킬링필드에서 갖난아기의 웃음 소리와 Rainbow 와
적군이였던 이웃과의 Shaking hands 기대하는
슬프지만 희망찬 노래소리가 들려요.
서로 죽이고 죽는 이현실 때문인듯해요.
님에게 축적된 것이 이토록 폭발하니
독자든 청중이든 남을 고무(鼓舞)시키네요.
스펜서나 밀턴 세잌스피어..윌리엄 워즈워즈
다 일면식은 있었던 분들인데 위의 여행기를 읽으며
새롭게 이 분들을 더 가까이 만나보고싶은 충동이 일어요.
시간이 있다면, 영국을 여행하면서 역사와 문학를 배우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역사와 문학은 우리를 반성하게 하죠. 여행은 그래서 좋아요. 때로는 흥분하게 하고, 때로는 숙연하게 하고...
데스테 2009/04/20 15: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임과 하이드렌쟈 마크로필라의 매치,
고임, 넘 이뻐^^
Olive'Garden 2010/03/17 1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W.Wordsworth의 '무지개'란 시를 찾다가 이곳까지 들리네요.잘 간직된 그의 생가와 더불어 그의 詩의 향기에 작은 부분이라도 거스를것 같지 않은 정원의 잘 다듬어지고 관리된 모습을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